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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탐방

마더 (세상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

 

일드 마더의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제목 '마더'가 학대 받는 아이를 유괴하여 딸처럼 사랑하는 나오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2화를 보게 되면 무릎을 탁!하고 치게 된다. 이 '마더'가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마더'라는 명사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TV 뉴스에 끊임없이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은 저 아이를 구원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더군다나 직업이 선생이나 기자같은 학대 당하는 아이를 더욱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직업의 소유자라면 그러한 충동이 더욱 강하게 들 것이다.

스즈하라 나오라는 아이들이라면 질색하는, 어쩔 수 없이 초등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된 한 여성은 그러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학대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를 유괴한다.

물론 학대 당하는 아이를 유괴하여 구원한 것이니, 그 행동은 선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구원을 위한 유괴라도 유괴는 유괴일 뿐.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로 가족과 등지고 살아온 나오는 자신이 유괴한 아이, 레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지고, 절연해온 가족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가족과 재회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 드라마의 제목 마더는 단순히 나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나오 주변의 모든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오와 레나(혹은 츠구미)의 도피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 갈등들은 각자가 지닌 모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포장되고 바람직한 모성'애'가 아니라, 엄마라면 가질 법한 모성말이다.

 

 

 

 

 

 

 

 

-------스포주의-------

 

 

 

뭐 스포일러라기엔 너무 일찍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사실 나오는 입양된 자식이다.

그런데 초등생 무렵 버려지고, 입양되어서 그런지 아무리 헌신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줘도, 그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능력이 넘쳐나는 양어미니에게 민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되풀이 하며,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누가 되는 것 마냥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나오의 양어머니인 스즈하라는 나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나오의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언행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그럴 듯한 이유를 대자면, 나오가 자신이 스즈하라의 딸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나오를 지나치게 배려한 스즈하라의 양육방식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의 풍파를 지독하게 겪은 상당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오 역시 말 잘듣고, 착한 아이였을 것이다.
눈치도 지나치게 많이 보고, 늘 움츠러든 채로 지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스즈하라는 자연히 나오에게 훈육을 소홀히 하였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말 잘 듣는 아이이고, 잘못해도 스스로 금방 반성할 테니까.

하지만 나오의 본성이 원래는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나오의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성향은 후천적으로 발현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도리어 동생들과 다르게 자신만이 두둔당하는 채로 양육되는 환경 자체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도리어 스즈하라의 나오를 향한 배려가 나오 스스로가 자신이 스즈하라의 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나오는 친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길러졌으니까.

이러한 정황은 둘째 동생이 "엄마는 언제나 언니만 감싸지!"하고 툭 내뱉은 볼멘소리에서 추측이 가능하다. 

 

뭐 아무튼 양어머니인 스즈하라가 나오의 친어머니인 모치즈키보다 나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오의 양어머니가 츠구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친어머니가 츠구미를 받아들인 것은 그 두 사람이 양어머니와 친어머니여서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스즈하라는 짐작컨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던져본 사람이 아니고, 모치즈키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츠구미를 향한 두 사람의 반응이 상반되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즈하라는 정상성에 속해 있는 것을 넘어 최상류층에 속하고, 모치즈키는 포기할 것마저 없는 빈곤층에 속하기 때문에 츠구미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스즈하라에게 나오는 끔찍하게 아끼는 딸이고, 츠구미는 불쌍하긴 하지만 자신의 금쪽같은 딸의 앞길을 망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츠구미의 존재는 나오의 삶을 희생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나오를 시궁창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즈하라 입장에서 츠구미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후반부에는 츠구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만)

반대로 모치즈키는 자신의 딸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자신의 인생을 내던져 본 사람이기 때문에, 나오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치즈키가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물론 누군가는 인생을 체념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자면 모치즈키는 나오가 츠구미를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나오의 남은 인생이 후회와 죄책감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오와 레나의 신분 세탁을 적극적으로 돕고, 공범으로 몰릴 지언정 도피까지 도왔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사랑하는 나의 딸을 위해 모든 걸 내던져 본 엄마들의 차이인 거지, 사랑의 크기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카모트 유지는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인 줄 모르고 보면, 작가가 여자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섬세하게 각본을 쓴다. 사카모토 유지의 최고의 장점이자, 그의 드라마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사카모토 유지의 여성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도 그의 남다른 여성관이 진하게 묻어나는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레나의 친모이다.

레나의 친모는 태어나길 아동 학대범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누구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아동 학대범이 된 것이다. 고향에서 어떤 할머니의 도움으로 레나를 키울 때, 레나의 친모는 누구보다도 레나를 사랑하고 레나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하지만 가난과 편견, 피로가 그를 아동 학대범으로 만들었다.

물론 레나의 친모의 서사가 아동 학대범을 옹호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비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아동 학대범이 된 이유들은 너무나도 납득이 간다.

보통 모성을 신격화하는데, 모성을 가진 엄마도 사람이다.

온갖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는 사랑이 많은 엄마도 있지만, 세상의 풍파에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엄마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나약한 엄마들을 아동 학대범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이다.

레나의 친모를 통해 사카모토 유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난하고 어린 싱글맘들의 애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로 인해 태어난 아이를 책임지기에는 엄마도 철이 없고, 나와 아이 둘 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돈을 벌 수는 없다. 수입은 줄어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해 짜증만 내고, 친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여 점점 소외감만 늘어나고, 나의 아이의 잘못의 근원은 싱글맘인 나에게 있다고 세상이 말한다. 

엄마도 사람이고, 사람은 선하지 않기에 결국 세상이 엄마에게 쏟아내는 지탄, 몰이해는 결국 가장 약자인 아이에게 향한다. 엄마는 신이 아니고, 엄마를 세상의 끝으로 내몬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레나의 친모같은 경우는 매우 극단적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던 세상에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감내해내는 수많은 싱글맘들이 있다. 이 엄마들이 아동학대범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싱글맘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마더에는 아빠가 나오지 않는다. 아빠가 전면으로 등장했다면 마더라는 제목이 이 드라마에 주는 의미가 많이 희석되었을 것 같다. 

 

아무튼 마더에서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나온다.

자식을 위해 인생을 버린 엄마, 친자식이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사랑한 엄마, 딸을 구원하기 위해 범죄자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 자식의 질병까지도 끌어 안는 엄마,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까지.

 

+ 오노 마치코는 연기의 신이다.
최고의 이혼에서의 모습, 레나를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 레나를 학대하는 엄마의 모습, 다 다른 사람같다.
물론 마더에서의 과거와 현재는 모두 같은 사람임.

최고의 이혼과 마더에서 레나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의 캐릭터는 똑같이 연기할 만도 한데, 둘이 전혀 다른 사람 같다.

세계관 충돌이 일어나서 둘이 만나면, 최고의 이혼의 유카는 마더의 히토미를 보고 젊은 엄마가 열심히 사네~하고 응원해주거나 혹은 뉴스를 보고 마더의 히토미한테 쌍욕할 것 같다.

마더의 히토미는 최고의 이혼 유카를 보면서 복에 겨웠다 생각할 듯.